현재 대한민국에서는 한글 입력기에 대한 표준으로 두벌식 자판만을
채택하고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대부분의 쿼티 형식의 자판에선 두벌식 입력기를 사용하고 있고, 실제로 모든 운영체제(Windows, Mac OS X, 한글 입력을
지원하는 Linux 기반의 OS 등)는 전부 별도의 설정이 있지 않는 한 기본 한글 입력 값이 두벌식 자판으로 되어있다. 이렇게 공식 한글 입력기로 두벌식 자판이 채택된 것은 5 공화국
때이다.
5
공화국 시절, 전두환 前 대통령은 타자기와 컴퓨터 등에서 사용되던 故 박정희 前 대통령 때의 네벌식 자판을 폐지하고, 새로운 표준을 만들 것을 지시하였고, 결과적으로 두벌식 자판이 표준으로
등재되게 되었다.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네벌식에서 두벌식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많은 打者들과
速記士들이 고충을 겪었다는
기사와 함께, ‘각계각층의 전문가를 선임하여 제작한 가장 우수한 자판’이라는
전두환 정부의 주장을 살펴볼 수가 있다. ‘각하’의 이러한
표준 방침은 30년 가까이 된 지금까지도 유일한 표준으로써 존재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99.9%의 사용자들이 두벌식을 사용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하지만, 두벌식 자판과 꾸준히 싸워온 자판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세벌식
자판이다. 세벌식 자판은 故 공병우 박사가 한글 창제 원리에 기반하여 제작한 자판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40년대의 수동 타자기에서부터 그 효율성을 인정받은 자판이다. 제작자인
공병우 박사와 그의 단체인 한글 문화원은 두벌식 자판의 표준화 제정부터 현재까지 세벌식을 꾸준히 복수표준으로 채택할 것을 건의해왔으며, 공 박사의 창제 의의와 효율성을 앞세워 세벌식 자판의 보급에 앞장서고 있고,
나아가 세벌식 자판의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꾸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세벌식 사용자의 비율은 고작 0.1%를 웃도는 아쉬움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는 우선적으로 두벌식 사용자가 월등히 많아 세벌식 자체를 접하기 어렵다는
데에 있으며, 세벌식 배열이 찍혀있는 키보드는 판매조차 이뤄지지도 않고 있고, 실제 세벌식 사용자들 또한 한편으로는 번거로운 별도의 설정 작업을 해줘야 현재 환경에서 이용이 가능한 점 등이
있다. 다시 말해서, 공인 자판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으로 인해 세벌식 사용자는 크게 늘지 않고 있는 추세이며, 기존의 세벌식 ‘전도사’들조차도 세벌식의 보급화를 포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세벌식 자판의 우수성에 대한 설명 등을 통하여, 세벌식 자판을 소개하고, 세벌식 자판이 두벌식 자판과 함께 복수표준화가
이뤄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다룰 생각이다.
우선적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두벌식 자판에 대해 짚어보고 넘어가자. 두벌식 자판은 모두가 기본적으로 머릿속에
넣고 있고, 심지어는 영어로 된 자판도 읽어낼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두벌식과 세벌식의 원활한 비교를 위해 익히 알고 있는 두벌식 자판을 다시 짚어보려는 것이다. 다음은
두벌식 자판의 배열표다.

Figure
1 한글 두벌식 자판(대한민국)
위 그림에서 알 수 있듯, 두벌식
자판은 왼손으로 자음을, 오른손으로 모음을 치게 되어있다. 자세하게
살펴보면, 자음은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예사소리, 유성음, 거센 소리로 이뤄져 있고, 된소리는 Shift 키를 눌러 입력하게 되어있다. 모음의 경우, 최대한 단순한 형태의 모음으로 구성이 되어있고, 굳이 규칙을 찾자면
모양이 비슷한 모음끼리 모아놨다는 것이다(YH, BN, UJ, IK, OP는 서로 붙어있는 키들이면서
형태상 모음이 비슷하다).
이러한
방식은 우리가 한글을 배울 때의 가장 기본적인 방식과 유사하다는 데에서 그 편리성이 생긴다. 다른 말로, 초종성의 구분이 없기 때문에 처음 자리를 외울 때 유리하다는 뜻이다. 일례로, ‘눈’이라는 글자를 타이핑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ㄴ 에 해당하는 자리와 ㅜ 에 해당하는 자리만을 외워주면
타이핑을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장점은 처음 사용자들의 입문에 있어 굉장한 시간적 절약을 보장해주며, 이는 곧 컴퓨터로의 빠른 접근으로 이어진다는 데에 있다. 또한, 이러한 한글 자판은 프로그래머들에게 편리함을 더해준다. 또한, 숫자판에서 Shift 키를 눌렀을 때의 특수문자나 여러 종류의 괄호들, 역슬래시, 슬래시, 콜론, 세미콜론, 물음표, 온점, 반점 등의 모든 기호들이 영어의 QWERTY 자판과 완벽하게 호환(\제외)된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
즉, 한글 타자에서 익힌 특수문자의 자리를 전혀 바꿀 필요가 없이 한글 타자에서도 자연스럽게
적용시킬 수 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하지만, 두벌식 자판은 굉장히 치명적인 약점이 한 가지 있다. 여러 방면에서
드러나는 두벌식 자판의 단점은 바로 효율성이다. 우선적으로 타이핑에서의 물리적 효율성 문제가 있다. 두벌식은 전두환 정권에 의해 특별한 이유가 없이 표준이 된 자판이므로, 실제
타이핑 환경을 고려하여 만든 것이 아닌, 그저 자모음 단순 배열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i]
실제로 한글 구조를 보게 되면 대체로 종성에서도 자음이 쓰이므로 자음의 타이핑이 모음보다는 많다고 볼 수 있는데, 오른손잡이가 많은 한국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두벌식 자판에서는 자주 타이핑되는 자음이 왼손 자리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단순한 배치부터 시작하여, 문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ㅆ 등을 고려했을 때, Shift의 사용 빈도가 높다는 것이다. 앞으로 비교할 세벌식과
비교를 할 경우, 타이핑에 있어 세벌식은 Shift를 사용하는
빈도가 1%인데 반해, 두벌식은 Shift의 사용빈도가 무려 20%에 달한다. 대체로 ㅆ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인데, 이 또한 왼손의 Shift를 사용하므로 왼손에 상당한 무리가 간다는 말이 된다. 또한
종성이 있는 글자를 입력할 경우 왼손-오른손의 타이핑을 거치고 다시 왼손으로 돌아가 타이핑에서 효율성에
문제가 생기게 되고, 나아가서는 도깨비불 현상으로 인한 오타를 불러 일으키게 된다. 정리하자면, 두벌식 자판은 왼손과 오른손의 타이핑 빈도가 균등하지
않아 물리적으로 신체에 상당한 피로를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물리적인 문제점 외에도, 도깨비불현상이라는
문서 작업 내에서의 효율성 문제도 존재한다. 도깨비불현상은 다른 말로 終聲優先現像이라고도 하는데, 말 그대로 자음이 입력되었을 경우 모음 입력 전까지 초성보다는 종성으로 인식한다는 뜻이다. 일례로 왼쪽과 같은 단어를 친다고 가정해보면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된다.
ㅇ
|
ㅇ 입력
|
오
|
ㅗ 입력
|
외
|
ㅣ 입력
|
왼
|
ㄴ 입력
|
왽
|
ㅈ 입력
|
왽ㅈ
|
ㅈ 입력
|
왽조
|
ㅗ 입력
|
왽족
|
ㄱ 입력
|
표 1 두벌식 입력 과정(도깨비불 현상)
현재
두벌식 자판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경우를 목격한 일이 드물 것이다. 이는 純 한글 오토마타를 적용한 타이핑으로, 쌍자음을 입력할 때는 자음을 연속으로 타이핑을 하게 만든 오토마타 방식이다.
하지만 두벌식 자판에서는 이러한 ‘한글 쓰기 방식’을
적용한 순수한 오토마타의 구현은 불가능하며, 오히려 위와 같은 종성 우선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Shift 키와 종성인지 초성인지 인식하는 루틴이 따로 포함이 되어야 하는 큰 단점이 있다.
여담으로, 이러한
타이핑 방식으로 인해 의미 변화가 생기는 경우도 있는데, ‘나 오늘 생일이야, 선물은 없어?’를 ‘나
오늘 생ㅇ리야, 선물은 ㅇ벗어?’ 라는 묘한 의미를 가진
문장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농담 또한 두벌식만의 재미라면 재미일 것이다. 하지만, 정석적인 타이핑에서는 문법적인 오류라는 문제를 초래하는, 두벌식만의 심각한 문제라고 봐야 한다.
설계적인 측면에서 덧붙여 말하자면 글쇠만 두벌식이지, 실제로는 중성 입력 여부에 따라 초성이 될지 종성이 될지를 구별해야 하는 루틴이 들어가게 되는데, 이로 인해 결과 표시 체계는 세벌식과 같다. 한마디로, 굉장히 위선적이다. 이로 인해 각 글자에
해당하는 표시값들을 전부 보유해야 하는 극도의 비효율성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i] 다음은 두벌식의 전신인 네벌식 자판 개발자(총 15명 中 11명)들의 말이다.
#김상봉(심의위원,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기술고문) : 3개월만에 표준자판을 만들라는
주무 담당관의 지시가 있었는데, 이는 애당초 무리였다. ☞
정부가 무리한 요구를 했지만 까라면 까야지 뭐
#이창우(심의위원, 성균관대학교 교수) : 글자판 그 자체는 아무런 결함이 없다. 일부 단체에서 오타율이 심하다고 비판하는데, 이것은 사전에 인정했다. ☞ 멀쩡은 하지만 오타 심하다는 거 맞음
#강명순(심의위원, 한국 기술사회 기술사) : 사용자,
즉 타자학원이나 강사가 타자 피교육자들이 선택, 평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내 알 바 아님. 쓰면
된 거지 뭐. 다수결 몰라?
#최징호(심의위원, 전기통신연구소 통신기자) : 그 당시 나는 본 연구소 대표로 참가했으나, 타자기는 전문분야가 아니므로 실질적인 심의 연구에는 참가하지 못한 셈이다. ☞
난 연구 안함
#유병택(심의위원, 특허국 심사관) : 나는 타자기 전공은 아니다. 관공서를 출입하다 보니 관심을 갖게 되었고… ☞
난 타자기 잘 모르는데 시키니까 했지
#오현위(심의위원, 대한
전자공학회 회장) : 그 당시 의견이 있으면 말해달라는 위촉이 있어 잠시 참가했는데, 이제는 기억이 없고 타자기 전문이 아니라서 장단점을 논하기 어렵다.
☞ 난 기억이 안 나는데(유체이탈
화법), 근데 솔직히 나도 잘 모름
#윤덕규(심의위원, 국립공업연구소 기계공작 과장) : 나는 타자기 전문가가 아니고, 기계학을 연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타자기 글자판에 계속 몰두하지 않아, 개인적인
의견을 충분히 말할 수 없다. ☞ 타자고 글쇠고 난 잘 모르고 타자기 제작은 거 잠깐 한번 해본 거야
#박수명(심의위원, 대한
정밀 기계센터 기술부장) : 나는 타자기 전문가가 아닌 정밀기계 공학자로서 선정, 참가하게 되었는데, 나는 전문가가 아니어서 주관적인 견해를 표시할
수 없으나…
☞ 글쇠 배열 그딴 거 모르고 그냥 타자기라는게 잘 굴러가는지만 확인하는
일을 했어
#이윤표(심의위원, 중앙일보사 공무부장) : 나는 활자 디자인 전공으로 그 당시 심의위원에
위촉된 것으로 아는데, 타자기 연구는 전문이 아니다. ☞
글씨체 디자인 담당이라 잘 모르겠다.
#남준우(심의위원, 한국
과학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 : 현행 표준 자판에 결함 여부는 지적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타자기에 관해 계속 연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확실한
답변을 할 수가 없다.
☞ 그, 두벌식은 연구가
안된 그, 하나의 자판이야. 그러니 모른다고 할 수 밖에
없잖아?
#안인식(심의위원, 대한
공론사 기사) : 국무총리 훈령 81호 표준 자판이 시행되고
있는 작금에… 글자판 일부 모순점을 두고 왈가왈부 한다는 것은 전근대적인 사고 방식의 소치라고 본다.
☞ 아 거 귀찮게 왜들 그래. 다들
쓰는데 그냥 잔소리 말고 좀 써. 기껏 새 자판 만들어 줬더니…
※
네벌식 자판은 다른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가 있는데,
이는 벌수의 다양화로 좀 더 깔끔하게 한글이 찍히게 만들 수가 있었다. 실제로, 당시에는 다섯벌까지 존재하였는데, 세벌식의 글씨가 가장 더럽고(상황별로 초,중,종성의
위치가 바뀌지 않는 자판이기 때문), 다섯벌이 가장 깔끔하다. 하지만
여전히 비효율적으로 통계적인 수치는 무시한 것이기 때문에 타이핑은 굉장히 힘들었다.
※
하지만 이 자판 배열이 그대로 두벌식이 되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참고자료1 네벌식 자판 제정 당시의
公論



참고자료2 한글 네벌식 자판과 세벌식/네벌식 타자기의 입력결과(글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