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2012년산 현무궁, 2013년산 오현현무궁, 2011년산 화랑궁입니다.


화랑궁을 쓰다가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져 현무궁으로 갈아탔었는데, 5월 포항에서의 대회 때 저 오현 현무궁을 보고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느낌을 말하자면, 화랑궁은 실소요파운드가 더 높게 느껴짐과 함께 충격이 좀 세지만, 발시 순간만큼은 꽤 경쾌합니다.

현무궁은 가야궁을 본따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화랑에 비해서는 훨씬 부드럽게 술술 잘 차는 것이 특징입니다. 발시 순간도 경쾌하고요.

오현현무궁은 현무궁 중에서 부산 대리점에 계신 분께서 만드신 활인데, 충격흡수용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 세 활 중에서는 제일 부드럽게 잘 차는데, 한가지 아쉽다면 제 궁체의 문제인지 현이 도고자에 가서 붙을 때 소리가 경쾌한 핑 소리보다는 텅 소리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여튼 오현현무궁에도 꽤 만족을 하면서 사용하는 중인데, 현무가 화랑보다는 개인적 체질에 더 잘 맞는 것 같더군요.


화살은 해동궁에서 만든 화살 2순과 현무화살 1순을 사용중입니다.

원래는 국민시와 해동시를 섞어 썼는데, 두 화살이 깃 촉 무개중심 무게가 다 달라서 사용하기가 불편하더라구요.

그래서 결국 현무화살을 한순을 더 사게 되었습니다. 현무가 해동에 비해 매우 가벼워서 조준할때 과녁 크기 반정도는 내려야 하더군요 ㅡㅡ;; 같은 6치 6돈인데 왜그러는지...ㅋㅋ


요즘은 참.. 활쏘고나서 화살 주으러 무겁에 들어가기가 싫은 계절이네요ㅎㅎ.. 화살을 잡으면 뜨끈뜨끈...ㅋㅋ

어서 가을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느긋하게 살아보자 > 우리활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좌궁 우궁 선택하기  (2) 2015.02.09
어제 습사하면서..  (0) 2013.07.05



요즘 여름학기 기간이 한참 지나가고 있다. SS로 단순히 자습+내가 원하는 취미활동을 할 겸 해서 3, 4교시에 진행되는 0단위짜리 국궁 수업만을 신청했었다. 그냥 쌤께서도 편할 때 와서 습사를 하라고 하셔서 마음 편하게 수능준비라도 하겠거려니 했었다. 그런데 실상은 오히려 스트레스에 가까운 것 같다.

스트레스는 사실 오래 되기는 했다. 집궁을 한지 햇수로 어언 2년 째가 되어가고 있고, 그동안 4번의 대회에 참가했었다. 우리 기수는 6번의 기회가 있었으니, 모두 나갔다고 볼 수는 없다. 실제로는 5번의 기회려나? 1학년 때의 전국체전은 그냥 3학년들이 쌓아 놓은 시수에 숟가락만 얹는, 성쌤이 대충 뽑아서 보내신 대회니 말이다. 쨌든, 이렇게라도 쌓인 기분을 풀고싶어서 글을 쓴다. 2011년 7월의 첫 대회는 물론 잘 할 수가 없던 대회였다. 6월에 집궁을 한 나로써는 다른 애들보다 넉달 정도의 실력차이가 났고, 우리 모두 사실상 집궁은 6월에 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1개월만에 좋은 시수를 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물론 여학생들의 경우는 화살의 힘이 약해 운빨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사실 이마저도 이해가 안간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신에 맞춰서 활을 쏘는데 왜 남녀 시상의 시수 커트 차이가 그렇게 심한 것인가. 포항이나 안양, 인천처럼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면 이해를 하지만, 살곶이와 같이 바람 한 점 없는 곳에서의 시수 차이가 4중이상 난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1중도 상받는 여자쪽은 솔직히 부럽다기보단 이해도 가지 않는 이상한 대회라고 생각된다) 한명?정도는 상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찌 되었던, 나는 몇일만에 집궁을 해서 한달만에 나간 대회라 순중으로 그쳤다. 단순히 경험정도였으니 상관은 없었다.

그런데 10월 전국체전 때 2, 3학년에서 선수가 부족해서 쌤께서 1학년 도토리 키재기 중에 조금 낫던 남자 3명을 같이 보냈는데, 3학년 선배들덕에 단체전 상까지 받고왔다. 이때부터 약간 화가 나기 시작한다. 실력이 뛰어나다고는 볼 수 없는 학생들이 나가서 밥숟가락을 얹어서 상을 받은 것이다. 한 명은 인정하지만, 나머지는 도저히 집궁 햇수에 걸맞지 않는 궁체를 보여주고 시수도 나오지 않는데 무려 전국체전의 은상이라는 상을 받게 된 것이다.

10월은 그런 운이 작용했고, 나는 그 운의 대상이 아니었다. 어쨌든 나는 5월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고, 쌤 없이 전사범님과 같이 간 대회라 전사범님께서 단체전 명단을 잘못하는 바람에 엉망인 순서로 서서 결국 다들 분위기에 휩쓸려 망했었다. 사실 나는 당시에 궁체가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대회에 대해서는 나는 인정을 한다. 다만 좀 아쉬웠을 뿐이다.

그 해 7월, 분당에서의 대회가 있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단체전 명단 확정을 위한 비교사를 진행하는데 장 녀석이 미루고 미루다 결국 시간이 없어서 지난 대회 실적으로 가겠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숟가락을 얹은 그네들로써는 유리하고 그렇지 않았던 나로써는 굉장히 불리한 조항이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장이 계산하기 편하라고 나는 단체전을 안나가겠다고 말했으나 이 녀석이 애초에 나를 개인전에서조차 빼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단체와 개인에서 운이 모두 좋았던 이 학교의 국궁부는 우승을 했고, 모두 상을 하나씩 먹어갔다. 나만 아무 이유없이 빠지고 개인적인 이유로 상담 등을 진행하는 동안 나머지는 단체로 상을 탄 것이다.

너무 화가나서 그 대회가 끝나자마자부터 지도는 해주신 적이 거의 없던 쌤을 뒤로하고 분당에 찾아가서 문 사범님께 지도를 받으며 습사를 하였다. 결과적으로 그 해 여름이 끝나 학교로 돌아왔을 때에 나는 50시에 30~35중은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 당시에는 진지하게 승단심사를 보는 것을 고려할 정도로, 실제로 우리 학교에서 제일 잘했었다. 그렇게 나는 매 저녁을 굶고 10월에 있을 전국체전을 준비하면서 습사를 하였으나, 2시간 남짓한 시간에 150시를 넘게 쏘는 무리를 하여 결국 쥠손의 손목을 다치고 말았다. 애초에 활이 충격이 잘 흡수가 안되던 화랑궁이었어서 그 정도가 더 했겠지만 가장 큰 책임은 나한테 있었다. 몸 관리를 하지 않은, 내 잘못이 제일 컸었다. 시수가 나름 나왔어서 쌤도 기대를 하셨었는지, 아니면 빈말로라도 위로해주시려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번 대회에서는 상을 타오라고 말씀하셨는데, 대회 1주일 전 손목을 다친 나한테 프로의식이 없다고 핀잔을 주셨었다. 결국 나는 그 대회에서 아픈 손목에 파스를 지속적으로 보이게 안보이게 뿌려가며 대회를 진행했고, 피아노치는 것조차 금지당할 정도로 부상당한 손목의 결과는 말그대로 처참했다. 그래도 나는 내가 우리 중에 시수가 제일 나았다는 점을 위안 삼으며 돌아왔고, 10월 대회의 실적은 굉장히 처참했었다. 문 사범님도 내가 그때처럼만하면 충분히 3등은 무리없이 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을 정도였는데, 팀이 꼴찌를 하고 왔으니 기분이 어떠했겠는가.

10월 대회가 지나서 결국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주겠다고 마음먹은 5월대회조차도 나가게 되었다. 결과는? 또 처참했다. 다시한번 말하자면, 10월의 반복이었다. 나는 15시 5중으로, 나머지 남자는 3중 쯤으로 마감했고, 여자 중에서는 3중, 1중으로 마감을 했다. 물론 5중을 한 내가 내 팀에서는 제일 잘한 것이다. 그런데 여자는 3중으로 동상을 탔고, 나는 5중으로 아무것도 못탔다. 마른 짚에 불붙이듯, 여자 1중은 장려를 줬다. 남자는 커트가 7중이었다. 그날 내가 느낀 것은 하나였다. 상은 신이 내리는 것이 맞으며, 나는 그 운이 더럽게 없는 사람일 뿐이라고.

한달 간의 사투끝에 나는 이러한 모든 일들을 어느정도 기억속에 묻어둘 수가 있었고, 지난 대회와 앞으로 있을 모든 대회를 잊고 살 것이며, 단순히 내 취미정도로만 활을 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정도 가능했다. 6월까지는.

그런데 7월이 돼서 여름학기 동안 나는 스트레스에 휩싸이게 되었다. 국제에서 국내로의 전환, 그에 따른 수능 준비가 나를 힘들게 하였고, 여기저기서 7월 대회가 분당에서 열리니 사실상 홈경기이기 때문에 내가 나가면 상을 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이용해서 나를 압박해오기 시작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이들에 대한 분노와 운을 탓하는 것, 그리고 내 불같은 감정 등을 겨우 다스려놨는데, 나를 저런 말로 다시끔 스트레스를 받게 만드는 것이었다. 난 분명히 저 말을 1년 전부터 들어왔고 계속되는 대회에서 거짓말같이, 그것도 내가 나갔던 대회들만 골라서 전체적으로 망했고(나도 실제 실력의 1/5, 1/10도 발휘를 못했으니까), 신기하게도 내가 나가지 않았던 대회는 실적이 좋았었다. 너무도 신비한 이 현상에 나는 기분이 정말 좋지 않았었는데, 지속적으로 나가지 않는게 이해가 안간다는 식으로 나를 대하니까 어쩔 수 없이 단체전 비교사 리스트에 명단을 올리게 되었다.

정말 쌓인게 많다. 주변사람들한테. 난 진짜 활을 왜 쏘고 있는걸까? 예전만큼 활을 좋아하고 있을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일하나 제대로 안풀리는데 과연 이게 하고 싶을까?


-2013.07.03

'느긋하게 살아보자 > 일상적인 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활을 다시 잡고 싶다.  (0) 2015.10.18

+ Recent posts